페북 김용범님
3주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서 폴리마켓 등 실시간 예측모델과 전통적인 여론조사 공히 트럼프후보의 우위가 뚜렷하다. 미국 대선과정에서 내가 주목해서 본 몇 가지 현상과 대선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른 단상을 적어본다.
1. 부통령 후보가 주목받은 선거. 1984년생 JD Vance가 트럼프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미국 정치사에 남을만한 파격이었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공전의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JD 밴스의 전격적인 발탁이 불러온 관심과 충격에 민주당이 대항마로 긴급 발굴한 사람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다. JD Vance와 팀 월즈 둘 다 본인이야말로 working class의 진정한 대변자라고 열을 올려 경쟁중이다.
2. 전미트럭운송노조(Teamsters)가 지지후보를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북미 최대 노동조합이니 팀스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충실한 지지세력이었다. 팀스터의 이번 민주당 이반은 그만큼 뼈아픈 사건이고 민주당과 working class의 연결고리가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3. 크립토가 당파적 이슈가 되었다. 공화당원이 눈에 띄게 크립토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도 아닌데 겐슬러 SEC 위원장의 강성 Anti-crypto 기조와 트럼프 후보의 열성적인 친크립토 행보가 극적으로 대비되면서 비트코인 시세가 트럼프 당선 가능성과 연계하여 움직일 정도로 크립토가 당파적인 특성을 보인다.
4. 약자와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전면에 등장한 선거. 선거 때마다(어쩌면 이 때만) 후보들이 중산층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번에는 파격적인 부통령후보 선정에서 보듯이 이 주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이 세계1위 부자나라지만 양극화도 심해 중하계층의 경제적 빈곤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문제를 다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엥거스 디턴의 2021년 책 제목은 아예 ‘절망의 죽음‘이란 표현을 담고 있고, 내가 1년 전 페북에 간단한 서평을 쓴 바 있는 메튜 데스먼드의 ‘미국이 만들어낸 가난‘(Poverty, by America) 은 모든 것이 풍족한 공동체와 집중적으로 고통받는 절망층으로 쫙 갈라진 이중사회 미국의 생생한 현실을 통렬히 고발한다.
5. 포퓰리즘을 옹호하는 패트릭 드닌을 주목한다. 드닌 교수는 JD Vance의 정신적 멘토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공화당 계열의 이론가중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최신작 ‘Regime Change’를 읽어보면 서양철학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소위 리버럴리즘의 역사와 한계가 정연한 논리로 정리되어 있다. 그는 현재의 미국 진보와 보수 모두 엘리트층의 구성은 비슷해서 진보대 보수 구분은 무의미하며 진정한 기준은 엘리트 대 대중(the elites vs the demos)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세우는 common good conservatism은 경제적 진보(친노조, 대기업규제, 사회 안전망 지원)에 문화적 보수(전통, 공동체, 가족, 결혼, 지역, 종교, 국가 중시)를 합친 개념으로 읽힌다. 그런데 진짜 서늘한 점은 일하는 사람들의 감성과 처지에서 거의 완벽하게 절연되어 길러지고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있는 지금의 엘리트와 그 통치기반인 meritocracy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그의 말이다(그래서 책 제목이 Regime Change!). Mixed constitution이란 키워드도 나오는데 보여주기식 믹싱(mixing as balancing)이 아니라 진짜 혼연일체(mixing as blending)라야 하고, 정치과정에 (지금은 실종되고 없는) 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면 그게 왜 문제냐고 반문한다. 드닌의 책을 읽고 나니 대선이 지금 흐름대로 결론이 난다면 장차 미국에서 격렬한 문화전쟁과 주류교체의 포퓰리즘 광풍이 예상된다. JD Vance와 트럼프가 요즘 부쩍 common-good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리고 전문가를 슬쩍 슬쩍 디스하는데 그 배경에 드닌 의 반엘리트 사상이 깔려 있다.
6. 대선 후 미중관계가 걱정이다. 미국이 심리적 내전상태에서 문화전쟁과 포퓰리즘 분위기에 빠져들면 자국중심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벌써 트럼프 후보는 중국에 대해 더 센 관세폭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게 공교롭게 중국도 자체적인 체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경제는 디플레이션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고 시진핑 체제의 불확실성과 위험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공세를 흡수할 여력이 크지 않으니 중국이 보복조치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 이 대목에서 대공황 초기 1930년에 나온 미국의 스무트 홀리 관세법과 그 역사적 파장이 떠오른다. 1929년 대공황으로 실업이 늘자 20,000여 품목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홀리법이 1930년에 통과되었다.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도 보복관세로 맞서면서 국제무역은 줄어들고 대공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얼마 전에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금의 세계경제가 1920년대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경고했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발언이다. 과거는 비웃거나 경시할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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